나는 후회를 잘 하지 않는다. 후회란 대부분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획일화된 교육을 받는다. 도덕, 윤리 등에서 가르친 내용 중 대부분은 20대 후반인 지금은 대부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어른들의 가치관에 대한 주입식 교육 뿐이다. 그 중, '후회를 통해서 발전하라'라는 말에 대해서는 애시당초 그를 믿지도, 따르지도 않았다. 후회란 대부분 가치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후회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이다. 이 좋은 것을 필자는 왜 가치가 없다고 폄하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자신을 왜 어리석은 존재로 치부하는가.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어렸을 때라 하더라도, 그 당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했던 존재이다. 후회를 하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자신을 못된, 혹은 못난 자신으로 폄하하게 된다. 이것이 과연 옳은 판단일까? 어르신들의 캐캐묵은 조언을 벗어던지고, 잘 생각해보자. 이게 과연 내게 도움이 되는가?
인간은 누구나 성장한다. 아니, 발달한다. 모자란 상태에서, 사유의 깊이가 깊은 성인으로 자란다. 나이가 들어 과거의 어렸을 적 선택이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해서, 과거의 모자란 자신은 과연, 정말 그때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일까?
아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나 미물 조차도 상황에 따라 판단한다. 지식을 가진 존재라면, 그 존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과 경험에 따라 판단한다. 어렸을 때의 당신은, 그 당시에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것이 나이먹어서 보기에 잘못된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 당시에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것이 거짓말이 되었든, 도둑질이 되었든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다섯살 짜리가 스티커를 훔치는 행동을, 어른이 되어서 그러면 안되었다고 자책해서 되겠는가. 다섯살 짜리는 그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믿었을 뿐이다. 이를 나이먹어서 돌이켜보며 스스로 과거의 자신을 탓함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아무것도 없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과거의 자신이 선택했던 바가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나더라도, 그 당시의 자신을 탓해선 안 된다. 탓할 대상은 언제나 현재의 자신이어야 한다. 과거와 미래의 마찰면에 존재하는 현재에서의 자신을 탓해야 정당하다. 현재의 자신의 모자람을 과거의 자신에게 그 탓을 돌리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것은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깍는 일일 뿐이다.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다. 단지 그 당시에 그것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행했을 뿐이다.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담배를 피우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면서 피우는 것이 나쁜 일이다. 이처럼, 우리는 옳고 그름의 판단을 지식이 아닌 현재 자신의 가치관과 현재 자신의 행동이 일치하는가로써 판단해야 한다.
모든 후회가 가치없는 것은 아니다. 톨스토이의 '부활'과 같이, 평생을 걸고 극복할만한 과오만이 후회로써의 가치가 있다. 예컨대 필자의 경우에는, 과거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채 중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임했던 것이 일생의 후회이다. 이로 인해 내 가치관은 꽤나 굳게 형성되어 유지되고 있다. '사람의 인생은 한 순간이며, 그렇기에 현재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모든 것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이는 즉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디엠(현재를 즐겨라)'와 맥락이 닿아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남아있는 모든 인생을 바칠만한 과오가 아니라면 후회는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후회 하지 마라. 과거의 당신에 당당하라. 당신의 탓을 과거에 돌리지 마라. 당신은 과거에도 건강했고, 발달하고 있으며, 현재 옳고 그름을 판단할만큼 성장해있는 상태이며 계속해서 성숙하고 있다. 현재에 생각하기에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현재에서 고쳐라. 과거에 탓을 돌리며 무마시키지 마라.
왜냐하면, 당신이란 존재는 과거에도 항상 가치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획일화된 교육을 받는다. 도덕, 윤리 등에서 가르친 내용 중 대부분은 20대 후반인 지금은 대부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어른들의 가치관에 대한 주입식 교육 뿐이다. 그 중, '후회를 통해서 발전하라'라는 말에 대해서는 애시당초 그를 믿지도, 따르지도 않았다. 후회란 대부분 가치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후회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이다. 이 좋은 것을 필자는 왜 가치가 없다고 폄하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자신을 왜 어리석은 존재로 치부하는가.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어렸을 때라 하더라도, 그 당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했던 존재이다. 후회를 하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자신을 못된, 혹은 못난 자신으로 폄하하게 된다. 이것이 과연 옳은 판단일까? 어르신들의 캐캐묵은 조언을 벗어던지고, 잘 생각해보자. 이게 과연 내게 도움이 되는가?
인간은 누구나 성장한다. 아니, 발달한다. 모자란 상태에서, 사유의 깊이가 깊은 성인으로 자란다. 나이가 들어 과거의 어렸을 적 선택이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해서, 과거의 모자란 자신은 과연, 정말 그때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일까?
아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나 미물 조차도 상황에 따라 판단한다. 지식을 가진 존재라면, 그 존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과 경험에 따라 판단한다. 어렸을 때의 당신은, 그 당시에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것이 나이먹어서 보기에 잘못된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 당시에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것이 거짓말이 되었든, 도둑질이 되었든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다섯살 짜리가 스티커를 훔치는 행동을, 어른이 되어서 그러면 안되었다고 자책해서 되겠는가. 다섯살 짜리는 그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믿었을 뿐이다. 이를 나이먹어서 돌이켜보며 스스로 과거의 자신을 탓함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아무것도 없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과거의 자신이 선택했던 바가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나더라도, 그 당시의 자신을 탓해선 안 된다. 탓할 대상은 언제나 현재의 자신이어야 한다. 과거와 미래의 마찰면에 존재하는 현재에서의 자신을 탓해야 정당하다. 현재의 자신의 모자람을 과거의 자신에게 그 탓을 돌리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것은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깍는 일일 뿐이다.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다. 단지 그 당시에 그것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행했을 뿐이다.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담배를 피우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면서 피우는 것이 나쁜 일이다. 이처럼, 우리는 옳고 그름의 판단을 지식이 아닌 현재 자신의 가치관과 현재 자신의 행동이 일치하는가로써 판단해야 한다.
모든 후회가 가치없는 것은 아니다. 톨스토이의 '부활'과 같이, 평생을 걸고 극복할만한 과오만이 후회로써의 가치가 있다. 예컨대 필자의 경우에는, 과거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채 중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임했던 것이 일생의 후회이다. 이로 인해 내 가치관은 꽤나 굳게 형성되어 유지되고 있다. '사람의 인생은 한 순간이며, 그렇기에 현재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모든 것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이는 즉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디엠(현재를 즐겨라)'와 맥락이 닿아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남아있는 모든 인생을 바칠만한 과오가 아니라면 후회는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후회 하지 마라. 과거의 당신에 당당하라. 당신의 탓을 과거에 돌리지 마라. 당신은 과거에도 건강했고, 발달하고 있으며, 현재 옳고 그름을 판단할만큼 성장해있는 상태이며 계속해서 성숙하고 있다. 현재에 생각하기에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현재에서 고쳐라. 과거에 탓을 돌리며 무마시키지 마라.
왜냐하면, 당신이란 존재는 과거에도 항상 가치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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